성격상 새로운 드라마를 시작하지 못하는 편이라, 좋아하는 드라마를 두번 세번보는 편이다.
아래 유튜브를 보다가 2009년 취업활동을 끝내고 쉬면서 봤던 이 드라마가 생각이나서 찾다보니 왓챠님에서 시청이 가능하여 보기 시작했고 어느덧 몇화 남지 않았다.
일본에 오래도 살았고 일도 관련이 있다보니 한일관계가 악화가 되고, 최근의 네이버사태 등의 일이 터지면 더 부화가 치밀어오르고 씁쓸해진다.
애증의 일본에게 가장 부러운 것 중에 하나는 메이지유신! 지금의 일본이 되게 해준 변곡점이라고 생각을 한다.
료마전은 시바 료타로의 소설 '료마가 간다'를 드라마화 한 것이며 동란의 시절을 보낸 '사람'에게 초점을 맞춘 작품.
역사를 어떤 관점에서 누구의 입장에서 보는지에 따라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 크게 바뀐다고 생각을 하는데,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처럼 역사 또한 큰 관점에서 본다면 너무나 담백해서 그 때 개개인에게는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를 무시하는 것처럼도 느껴진다.
그런 의미에서 이 드라마는 이 동란의 시대 (격동보다는 일본에서 주로 쓰는 동란의 시대라고 표현하고 싶다)에 크고 작은 영향을 주고 받으며 살아가던 사람들의 모습과 감정을 개인이 이해하기 좋게 보여준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아 물론... 특유의 너무 일본무사스러운 제스츄어, 행동, 특유의 일뽕 등을 보면 내가 부끄러워질 때도 있지만, 그건 정말 마이너한 부분이니 이런 역사물을 좋아하시는 분은 꼭 보셨으면 합니다.
처음 볼 때는 보이지 않았지만, 탄탄한 캐릭터들을 만들어 내고 그들에게 당위성을 주기 위해서는 작가가 얼마나 많은 연구와 노력을 했을지가 느껴지고 작가의 대단함을 느낀다.
정말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문학을 읽어야 하는 구나라는 생각을 하게된다.
어차피 역사는 인간이 만들어가는 것이기에 한 인간을 오롯이 이해해야 그 시절의 삶이 보이고 그 시대가 보이는게 아닐까?
인간 사카모토 료마의 성장과 선택에 대한 드라마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세가지 축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나레이션을 맡으며 료마가 죽은 후에 료마에 대해 설명을 해주는 미쓰비시의 창업자 '이와사키 야타로'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료마의 대척점에 있던 친구 '타케치 한페이타' 그리고 '사카모토 료마'
이외에도 무수히 많은 캐릭터들이 나오지만, 주로 이 세명이 어떤 일들을 겪으며 처음에는 이랬던 어릴때는 어땟던 사람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보여준다.
야타로는 조금 다르지만, 료마나 한페이타의 경우는 어릴때는 조금 더 말랑하고 착하고 상냥한 캐릭터로 그려지지만, 여러가지 시련과 고난, 사람들의 죽음, 성공, 좌절을 맛 보며 자신만의 가치관을 빨리 형성하고 그걸 위해 사람들을 모으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는 사람으로 묘사된다.
15년 전에 봤을 때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는 구나라는 정도로만 다가왔지만, 이번에 새롭게 보인 건 그들은 각자가 무엇인가를 버렸다는 것이다.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것을 위해서 한페이타는 순수함을 버렸고 료마는 가족과 고향을 버렸다. 15년전에는 한페이타는 참 못됬구나 료마는 왜 저랬지정도로만 받아들여지던 대목들이 크게 다가오는 것을 보면 나도 여러 시련을 겪어왔기에 조금은 이해가 되는건가라는 생각이 들며 뿌듯한 부분도 있다.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것은 개인에게 우연이나 필연적으로 다가오는 사건이나 사람들이 그 사람의 가치관의 형성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주는지를 보여준다. 료마가 흑선을 보지 않았다면 타케치가 죽지 않았다면, 료마의 모습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고 그의 선택도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어떻게든 이루고 싶은 것이 생겨버린 그들은 그걸 이루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 같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포기해야한다는 것을 아는 것
예전에도 몇번 적었지만, 일본 소년 만화의 크리세중에 하나는 소년인 주인공이 어른들이 어떤 목표를 위해 무엇인가를 희생하려고 하면, 그런 어른들의 논리에 분개하고 납득하지 못하며 자신의 고집을 관철해서 해피엔딩을 만들어 낸다.
어릴 때는 이런 것들을 보면 어른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포기를 해버린 것일까? 모든 걸 다 이루어낼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런데, 이제는 어른들의 입장이 이해가 되기 시작하니 소년만화의 이런 감성은 손에 잡히지가 않는다. 어른이 되어버린 나를 품어줄 다른 요소가 있지 않은 만화는 시작을 하게 되지 않는다.
보통 어린 주인공의 주위에는 이런 소년 소녀를 보호해주고 지켜주는 좋은 어른들이 있다. 그들은 냉정하지만 이런 젊고 어린 친구들의 치기를 자신의 예전모습을 떠올리며 어떨때는 이해해주고 지지해주며 어떨때는 나무란다.
현실이 그렇지 않으니 현실에서 좌절한 어른들이 이상적인 세계의 형성을 '순수한' 어린 주인공들이 이루어내는 것을 그려내고 그걸 보는 것 또한 큰 즐거움이고 희열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은 포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료마라는 사람은 자신이 생각하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타협을 하지 않았고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목숨을 포기하는 삶을 살았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역사의 큰 파도를 개인이 바꾸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고 파도를 피하거나 그 파도를 잘 타고 빠지지 않는 정도가 최선이지 않을까? 그런데, 료마라는 인물은 내전이 일어날게 너무나 분명해보였던 일본을 자신의 목숨을 바쳐 '내전 없이 일본을 개혁하겠다'라는 목표를 달성한게 기적과도 같은 일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씁쓸한 것은 이렇게 일본이 개혁에 성공함으로써 조선은 식민지가 되었고 2차 세계대전의 역사로 이어진다는 것이 나의 입장에서는 쓸쓸하다.
#한일관계 #일본역사 #메이지유신 #사카모토료마 #료마전 #료마가간다 #시바료타로 #역사 #근대사
'취향'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합법적으로 미치는 방법, 음악 (1) | 2024.09.05 |
---|---|
철제 가구에 대한 재발견 - 레어로우 (0) | 2024.06.04 |
노래, 이고도 - mouse (0) | 2024.02.02 |
안녕 선물 받은 카키 나이키 에어포스1 (0) | 2024.01.30 |
마음에 들었던 장면, 심플하지만 세련된 잔과 조명 (0) | 2024.01.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