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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죽일놈의 미래학자가 나는 되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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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학자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우리 모임에서 나온 '미래학자'는 우리의 주위에서 자주보이는 경영진과 실무진들 사이에 브릿지 역할을 하는 준경영진이 정보의 비대칭성을 활용하여 아직 이루어지지도 않은 프로젝트가 거의다 마무리된 것처럼 이미 완성된 것처럼, 심할 경우에는 5년이나 10년뒤에 가능한 일을 이미 절반은 해낸 것처럼 말을 하는 행태를 비꼬는 말이다.

회사를 다녀본 경험으로 미루어보아 이런 사람들은 회사에 꼭 있기 마련이고, 정도의 차이일 뿐이지 우리는 어느정도 이미 '미래학자'이기도 하다. 계획을 세운다는 것 그리고 그 계획이 실현될 것이라는 미음하에 또 다른 계획을 세우고 행동하는 우리의 모습이 미래학자이다.

이런 미래학자적인 기질은 리더의 자리에 올라가게 되면 극심하게 발현될 때가 있는데,

그건 바로 사람들을 불확실성을 뚫고 앞으로 전진시켜야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어느 프로젝트에 있어서도 정해진 정답은 없기에 매순간 선택을 내려야하고 까다로운 선택에는 불확실성이 함께한다. 그런 상황에서 나와 함께하는 팀원들을 설득하고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나 스스로가 확신을 가져야하는데, 확신을가지는 방법중에 하나가 그냥 믿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위대한 모험가, 창업가, 기업가, 예술가들은 모두 어느정도 이런 미래학자적인 기질이 있다.

사람들을 설득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엘도라도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고 그에 따른 막대한 이익을 나누는 것을 제안하는 방법일 수 있다.

순수한 동기부여나, 명예, 호기심, 즐거움과 같은 더 순수한 동기만으로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겠지만, 큰 자본이 필요한 대형프로젝트에서는 그렇게 퓨어한 동기부여만으로 사람들을 모은다는 것은 시간이 걸리고 힘든 일이다.

팔로워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보면, 리더가 저기에 뭐가있는지 모르겠는데 가자라고 한다면 처음에는 호기심에 같이 가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너무나 힘든 길이고 위험이 많다면, 그런 '권유' 때문에 위험과 수로로움을 무릎쓰고 그곳으로 가는 팔로워가 얼마나 될까?

이런 것을 생각하면 어느정도 미래학자가 되는 것은 필요해보이지만,

결국에는 그 정도 인 것 같다.

할 수 있는 자질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 감언 이설만으로 사람들을 모으고 그 과정에 막대한 자본을 사용했음에도 프로젝트를 거의 완수하지 못했다면, 그런 리더는 제2의 Fyre festival이나 테라노수를 우리에게 보여줄 가능성이 크다. 이런 사람들이 '성공포르노'를 만들고 사람들의 소중한 시간을 가져가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나는 미래학자인지, 아니면 너무 소심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너무나 보수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오닐도 고민해 본다.